칠레센트럴대학교의 한국학 발전과 한국자료실 개설

  • 작성부서 International Cooperation and PR Team
  • 등록일 2024-06-23
  • 조회 116
글자크기

칠레센트럴대학교의 한국학 발전과 한국자료실 개설



칠레센트럴대학교 비교한국학연구소장

김순배




칠레센트럴대학교 한국자료실 현판(출처: 칠레센트럴대학교)


2024년 1월 16일 칠레센트럴대학교 한국자료실이 개관했다. 이날 개관식은 본교 한국학 발전의 기본 틀을 갖추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칠레센트럴대학교의 한국학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2014년 2학기에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높지는 않았고, 한국어 초급 강좌 2개 반이 개설되는 수준이었다. 대학 측에서는 그마저도 개강에 필요한 최소 수강 인원을 채울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렇게 시작한 한국어 강좌는 수강생이 꾸준히 늘어났고, 한국학 특강과 세미나 등을 개최하면서 한국어를 넘어 한국학에 대해서도 뻗어가는 학생들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학문적 가능성으로부터 2016년 한국학 석사 과정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2018년 4월 정식으로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라틴아메리카 유일의 한국학 석사 프로그램이 운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학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학위 프로그램 개설을 통한 제도화의 필요성이 컸다. 프로그램 준비 과정에서 우리는 학부 전공지식을 한국학과 접목시켜 각 분야로 전문가를 진출시키자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자료실 개관 기념사진. 김순배 비교한국학연구소장, 산티아고 곤잘레스 총장, 김학재 주칠레한국대사, 최진옥 산티아고 세종학당장, 파트리시오 실바 칠레센트럴대학교 이사장(왼쪽부터, 출처: 칠레센트럴대학교)

한국학 석사 프로그램은 학제 간 커리큘럼으로 구성된 지역학으로서, 첫해 8명의 신입생으로 출발했다. 이후 꾸준히 인원이 늘어나 2021년 이후로는 매년 약 15~20명이 등록하고 있다. 학생들의 학부 전공은 역사학, 문학, 법학, 사회학은 물론 간호학, 생물학 등 다양하고, 수도 산티아고뿐 아니라 여러 지역의 대학에서 진학하고 있다. 공통점은 한국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열의를 갖고 있고, 자신의 학부 전공과 한국학을 연계해서 연구하고 논문을 작성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칠레센트럴대학교에서 한국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토대는 한국학진흥사업단의 해외한국학씨앗형 사업이었다. 2017년 처음으로 “칠레센트럴대학교 한국학 석사과정 운영과 비교한국학연구소 설립”을 주제로 선정됐는데, 이 사업을 통해 2018년 개설된 석사 프로그램 진학생들에게 수업료 50%에 해당하는 입학 장학금을 3년간 지급할 수 있었다. 개설 초기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가 아직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들에게 진학의 부담을 덜어주는 중요한 요인으로 기여했을 것이다. 또 이 사업에 힘입어, 한국학 전임 교원 1명을 추가로 고용해 강사진을 보강할 수 있었다.

산티아고 세종학당 한국어 수업 모습(출처: 칠레센트럴대학교)

그사이 칠레센트럴대학교에는 2018년 말 세종학당이 설치돼, 2019년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현재는 매 학기 15개 반에서 약 200~250명이 수강하고 있으며, 한국어를 배운 후 학문적 관심이 깊어져 한국학 석사 프로그램으로 진학하도록 하는 중요한 관문이 되고 있다. 2019년에는 비교한국학연구소가 개설됐다. 그동안 교육이 중심이었던 한국학 프로그램 운영체계를 연구와 결합하면서, 좀 더 체계적인 틀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비교연구를 통해 학문적 거리감을 줄인다는 기조 아래, 현재 연구소는 대학 안에서 한국학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연구진은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지원하는 해외정책연구 지원사업에 한국의 전자정부와 문화산업을 주제로 두 차례 참여하는 등 한국의 사례를 기반으로 칠레 여건에 맞는 정책적 시사점을 모색하면서 한국과 현지를 잇는 연구를 강화해가고 있다.

비교한국학연구소를 방문한 에밀리오 오냐테 칠레센트럴대학교 학술 부총장, 김학재 주칠레한국대사, 산티아고 곤잘레스 칠레센트럴대학교 총장 (왼쪽부터, 출처: 칠레센트럴대학교)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한 2차 해외한국학씨앗형 사업은 칠레센트럴대학교의 한국학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중남미 유일 한국학 석사 학위프로그램의 도약: 내실화, 확산, 차세대 배출”을 주제로 한 이 사업은 한국학 석사 프로그램의 질적 발전을 도모하였다. 예컨대 한해 3명의 학생을 한국으로 1~2개월간 현장 연구를 갈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한국을 직접 체험하고 논문을 발전시킬 기회를 제공했다. 아울러, 조교 및 논문 장학금을 지급함으로써 학생들이 교수진과 함께 연구에 참여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줄이면서 석사 프로그램에 매진하도록 지원하였다. 이런 노력은 현재까지 4명의 졸업생이 박사과정에 진학해 한국 관련 주제로 연구하는 성과로 이어져, 현지에서 한국학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초기 목표를 향한 순항을 돕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한국학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한국학 교육 및 연구를 위한 자료였다. 그동안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한국연구자료 지원사업을 통해 일부 도서를 기증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크게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나마 코로나 사태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거의 3년 동안은 온라인 수업이 실시되고 학교 도서관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디지털 자료를 활용했는데, 특히 논문과 달리 도서는 확보에 어려움이 많았다. 스페인어로 된 한국 관련 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영어 서적은 칠레에서 구입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어 사실상 학생들에게 구입을 권유하기 힘든 실정이었다.

한국자료실 개관기념 테이프 커팅 장면. 파트리시오 실바 칠레센트럴대학교 이사장, 김학재 주칠레한국대사, 산티아고 곤잘레스 총장 (왼쪽 두 번째부터, 출처: 칠레센트럴대학교)

이러한 현지 여건을 계기로 2022년 국립중앙도서관이 공모한 해외 한국자료실 개설사업에 지원했고 영광스럽게도 선정됐다. 그동안 라틴아메리카에는 멕시코(Colegio de México)와 엘살바도르(Universidad de El Salvador)에 설치된 바 있다. 남미에는 최초로 한국자료실을 개설하게 된 것이다.

칠레센트럴대학교 산티아고 캠퍼스 전경(출처: 칠레센트럴대학교)

이번에 설치된 한국자료실은 칠레센트럴대학교의 2개 지역 캠퍼스(산티아고, 라세레나) 가운데 수도 산티아고에 위치한 GHU 캠퍼스 지하 1층에 109 ㎡ 규모의 공간으로 설치됐다. 우선 2023년 1차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역사, 정치,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도서 1,600여 권을 기증받았으며, 향후 5년간 총 3,000권을 받게 될 예정이다. 이로써, 한국학 교육과 연구에 필요한 소중한 자료를 확보하게 됐다. 자료는 현지에서 관심이 높은 한류 관련 도서는 물론 한국의 재벌, 북한의 정치구조, 한국인의 종교생활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이 자료들은 본교 구성원뿐 아니라, 도서관 간 협약을 맺고 있는 70여 개 기관 및 대학 도서관이 이용할 수 있다.

한국자료실 내부(출처: 칠레센트럴대학교)


한국자료실은 한국 전통 문양의 미닫이문과 좌식 책상도 설치해, 이용자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됐다. 한국식 미닫이문 설치에는 사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칠레 현지에서 쓰지 않는 디자인이다 보니 설명하고 제작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는데, 일본식 문양의 디자인으로 짜는 것을 확인하고 수차례 수정을 거치기도 했다. 그리고 미닫이문에 사용할 전통 한지가 없어 한국에서 구입해서 가져와야 했는데, 몇 달이 걸리면서 사업진행이 늦어져 속을 태웠다. 하지만 이제 한국자료실은 1,600권 넘는 한국 관련 자료를 확보한 도서관일 뿐 아니라, 누구든지 방문하면 감탄하는, 대학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학 프로그램이 학교를 점점 점령하고 있다”는 농담 섞인 동료 교수들의 평가는 한국학이 이제 학내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잡는 과정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 소중한 한국자료실을 학생과 교수 등 학내 구성원이 자주 찾는 공간으로 만들고, 한국 관련 교육과 연구를 위해 최대한 활용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학교 도서관 운영진과 함께 여러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한국자료실 개관식에서 파리아스 시스터스의 한국 전통 부채춤·칠레 전통춤 결합 퓨전공연(출처: 칠레센트럴대학교)

자료실 개관식에는 세종학당 학생들이 참여하는 댄스그룹 파리아스시스터스(Farías Sisters)가 한국 부채춤을 칠레 전통춤 쿠에카(Cueca)에 접목시킨 퓨전 춤을 선보여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국의 낯선 전통춤이 칠레인에게 익숙한 춤과 어울려 공감을 끌어내고 서로를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그날의 춤처럼, 칠레에서 한국학의 꿈은 거창하기보다는 어쩌면 단순하다. 지구 반대편에서 한국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알아가고, 서로가 만나고 대화하고 조금 더 이해하도록 돕는 길이 되는 것이다. 칠레센트럴대학교의 한국자료실이 ‘Window on Korea’라는 사업의 표현처럼, 한국에 대해 더 이해하도록 하는 학문의 창이 되리라 믿는다.

Top